[Health] "동전의 양면같은 독성, 제대로 알면 막연한 불안감 없을 것"
‘가짜 백수오’ 사건으로 각종 영양제 등 건강기능식품의 효능에 대한 신뢰를 문제 삼는 사례가 많아졌다. 조사 결과, 관절통·어지럼증을 비롯해 여성 갱년기 증상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백수오 제품은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제품 중 5%에 불과했다. 가짜 백수오 유통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내츄럴엔도텍이 무혐의 판결을 받았지만 소비자들이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상태여서 백수오 파동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의료계 안팎에선 이번 ‘가짜 백수오’ 사건을 통해 일반 소비자들도 약물의 ‘독성(毒性·toxicology)’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조명행 한국독성학회장(서울대 수의과대 교수)은 최근 열린 제7회 국제아시아독성학회에서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을 비롯한 의약품, 건강기능식품에는 몸에 이로운 물질도 있지만 해로운 독성 물질도 포함돼 있다”며 “얼마나 많은 용량을 먹고, 그 용량이 지속되는 기간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 몸에 약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아스피린 과용 시 위장 점막 손상

독성학회에 따르면 아스피린은 해열제로 많이 먹는 의약품이지만 정량보다 10~20배 과용할 경우 발열 작용으로 위장 점막이 손상될 수 있다. 약이 되기도 하지만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또 박테리아에서 추출한 보툴리눔(보톡스 성분)도 많은 용량을 사용하면 독이지만 아주 적은 용량을 사용하면 주름을 개선하는 데 특효약이다.

보툴리눔은 조개에도 있고 밀폐된 통조림에도 있다. 하지만 아주 적은 양이어서 인체에 해롭지 않다.

조 회장은 “우리는 알게 모르게 하루에 4000여종에 달하는 화학물질과 접촉하는데, 이는 피부나 호흡기, 점막 등을 통해 몸으로 흡수된다. 일부 노인이나 어린이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지만 대부분 우리 몸이 자동 정화시켜 몸 밖으로 배출하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며 “각 화학물질이 식품의약품안전처나 환경부 기준치를 초과했을 때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음식물 섭취 시 독성성분 알아야

독성학회는 자연 속에 존재하는 독성을 ‘독소(toxin)’, 인간이 만들어낸 물질에 들어있는 독성을 ‘독성물질(toxicant)’이라고 분류했다. 천영진 중앙대 약학대 교수(한국독성학회 사무총장)는 “화학물질이 우리 몸에 들어오는 주요 경로는 음식물 섭취”라며 “음식물은 대부분 위와 창자에서 소화되고 간으로 이동하는데, 간이 대부분 독성을 제거하는 해독 작용을 한다. 때로는 화학적 변화로 독성이 더 커지기도 하지만, 해독 작용을 거치면 수용성이 높아지고 이에 따라 신장을 통해 소변으로 배출되는 게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최경철 충북대 수의과대 생화학·면역학교실 교수는 “화학물질에서 ‘안전하다’는 기준치는 과학적으로 설정되기 때문에 기준치를 100% 믿고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독성 문제는 많은 용량을 오랜 기간 먹거나 접촉해야만 유발할 수 있는 부정적 측면만 부각돼 사회 불안감을 조성해온 게 사실이다. 국민소득과 생활수준 향상으로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독성에 대한 무지가 막연한 불안감과 공포감으로 증폭되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은 초·중학생을 대상으로 독성학 프로그램을 개설해 교육하고 있다.

유해성 저감 제품 확인할 것

동전의 양면과 같은 독성물질을 알아야 개인 건강을 지킬 수 있고 막연한 불안감을 갖지 않는다. 예를 들어 산업현장에서 많이 사용하는 용제(solvent)는 사람들이 많이 흡입하거나 오랫동안 맨손으로 만지면 인체 세포가 녹아내리고 간이 망가져 사망할 수 있다. 강건욱 서울대 약학대학 교수는 “같은 물질이라도 기준에 부합하면 무해하지만 기준에 어긋나면 유해할 수 있다”며 “독성에 대한 사회적 혼란은 과학적으로 검증된 ‘기준’에 대한 부재에서 비롯된 만큼 독성학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독성학은 빅데이터 등 정보기술을 활용한 ‘시스템 독성학’으로 진화해 독성의 유해성에 대한 예측이 빨라지고 있다.

예를 들어 의약품 화학 구조를 입력하면 어떤 작용이 있을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과거에는 독성의 해악을 알기 위해 여러 신체 장기를 연구했지만 시스템 독성학으로 동시에 연구가 가능해져 인체 영향력을 종합 평가할 수 있게 됐다. 매일 접하는 독성물질에서 우리 몸을 보호하려면 먹고 접촉하는 물질에 함유된 독성 성분을 제대로 이해하고 전문가가 권고하는 적정량 기준을 지켜야 한다. 의약품은 기준에 맞게 복용해야 약효를 극대화할 수 있고 인체에 무해하다. 기준보다 넘치거나 부족하게 복용하면 독이 될 수 있다. 또 가능하면 유해성 저감(harm reduction) 제품을 사용하도록 한다. 친환경 천장마감재, 죽염, 환풍기 시설을 잘 갖춘 주방기기 등이 대표적인 유해성 저감 제품이다.

이준혁 기자 rainbo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