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태형 기자] 은퇴한 조부모들이 다시 육아에 뛰어들고 있다. 이른바 ‘황혼육아’다. 요즈음 유치원 행사나 공원, 마트에 가보면 아이를 데리고 나온 조부모를 만나는 일이 심심치 않다. 맞벌이 부부가 크게 증가한데다 현실적으로 높은 집값과 물가 때문에 손주들을 돌봐주는 조부모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자식들이 맞벌이를 하는 상황에서 믿고 맡길 수 있는 보육시설이나 베이비시터가 부족한데다 육아비용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보건복지부의 조사에 따르면 맞벌이 가구의 황혼육아 비율이 2009년 33.9%에서 2012년 50.5%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0~3세 영ㆍ유아의 70%, 미취학 아동의 35%는 최소 낮 동안 조부모나 외조부모가 돌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사진=게티이미지]

한 조사에 따르면, 황혼육아 조부모의 평균 노동시간은 주 5일 47시간으로 나타났다. 법정근로시간인 주 40시간을 훌쩍 넘어섰다.

노년에 쓸쓸하지 않고, 손주들의 재롱을 보는 기쁨이 크지만 건강에 무리가 갈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실제 황혼육아는 육체적ㆍ정신적ㆍ사회적인 건강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황혼육아를 하는 조부모에게 흔히 관절염, 요통과 같은 근골격계질환이 발생할 수 있다. 체중이 4~10㎏에 이르는 아기를 수시로 안아주고, 들어올리고, 씻기는 과정에서 이미 노화가 진행되는 몸에 무리한 하중이 가해지면서 원래 갖고 있던 질환이 악화될 수도 있다.

영아를 돌보게 되면 밤에 자주 일어나게 되면서, 수면에 방해를 받는 일이 많다. 이는 노인들에게 흔히 있는 불면증과 같은 수면장애를 더 악화시켜 늘 수면이 부족하고 깊이 자지 못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고혈압이나 심장질환이 악화될 수 있고, 우울증, 식욕저하, 무기력함이 생길 수 있다.

아무리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한 손자지만, 오랜 시간동안 아이와 함께 보내면서 노인들의 사회활동이 제한되기 때문에 고립감, 외로움, 소외감을 느끼게 되는 수도 많다.

이는 아이를 키우는 젊은 주부들과 비슷한 현상인데, 노인들의 문제는 한층 복잡하다. 노인들은 쉽게 우울증에 걸릴 수 있는데다, 신체적으로도 더 힘들다.

황혼육아와 관련한 건강 문제는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2003년 미국 하버드대 보건대학원 연구팀은 46~71세의 은퇴한 간호사 5만여 명을 대상으로 4년에 걸쳐 심장질환 위험도를 전향적으로 조사한 적이 있다.

그 결과 놀랍게도 9시간 이상 육아를 했던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심장질환 위험도가 55%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연구자들은 정확한 의학적 연관성을 밝히지 못했지만, 육아 관련 스트레스로 인해 심장질환 발생 위험도가 높아졌을 것으로 추정됐다.

또 육아로 인해 본래 노인들이 기존에 갖고 있던 각종 만성질환(고혈압, 고지혈증, 당뇨 등)에 대한 관리가 소홀해진 점이 원인으로 꼽히면서 육아와 건강한 생활습관(운동이나 식사조절)의 병행이 어렵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무엇보다 육아를 위해 자식과 함께 생활하면서 갈등이 불거질 수 있고, 육아비용이나 용돈 등 경제적인 문제도 더해질 수 있다.

이에 따라 황혼육아에 대해 부모와 자식 간의 깊은 이해와 배려가 필요하다.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이은주 교수는 “자식들은 주말이라도 부모가 육아에서 벗어나 적절히 스트레스를 해소할만한 여유를 갖도록 해야 한다”며 “부모들도 자신의 만성질환과 건강문제 관리에 소홀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이 교수는 “사회적으로도 마음 놓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보육시설을 확충해, 육아를 전담하는 노인들이 쉴 수 있게 지원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출처 헤럴드경제 이태형기자